초에 의리나 신념과 상관없이 돈만 바라보던 그들의 마음은 이미 안서주의 성채를 떠나 있었다. 큰 공방 없이 이레를 버티던 안서주의 성채는 마침내 여드레째 되는 날 성문을 열고 말았다. 성안에서 여진병들의 반란이 일어난 것이 그 주된 요인이었다. 안서주의 이성양 측근들은 자신들의 안전한 중원 철퇴를 조건으로 항복하는 데 동의했다. 오천의 중원 출신 군졸들이 그들을 따라 초라하게 후퇴했다. 이성양의 만주군 중 일부는 흩어져버렸지만 그래도 오만에 가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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